넋두리

다모(茶母)중에서

산동1 2022. 5. 2. 10:37

-황보윤이 채옥한테 보내는 편지

찢어진 살갗이 아프더냐
네 상처에 나는 심장이 멎었다.
상처에 아파 눈물 흘렸더냐
네 눈물에 나는 뇌수가 먹먹했다.
네가 아프다고 느끼면 나는 몇곱절 더 아프고
네가 슬프다고 느낄라치면
나는 천길 낭떠러지 끝도 없는 절벽으로 밑 바닥으로 꺼꾸러짐을
네가 정녕 모른단 말이더냐
몰랐단 말이더냐
네게 난 무엇이더냐
내게 넌 들숨이고 날숨인 것을
하루 한시 네 안위와 네 상념 걷어본적 없거늘
삼백육십날이 천날이 지나도록 내 안에 너를 담고 있거늘
이러한 내 맘 아는지 모르는지
못내 모른척 뒤돌아 저만치 가는 네게 난 무엇이더냐
네게 난 무엇이더냐
너를 알고 다시 태어 났거늘
너를위해 너를 위하는 나를위해 살고저 노력했거늘
내 모든 것 네게 주며 살자 했거늘
이러한 내맘 아는지 모르는지
끝내 모른척 외면하는 너는 네게 난 무엇이더냐...
전날 문지방 너머로 들려오던 너의 체읍(涕泣)하는 소리에 내 억장이 다 무너져 내렸다.
온 천지사방(天地四方)이 새까맣게 변하던 그 순간,
내 다시 몸을 돌려 너에게로 달려가고만 싶었느니라.
허나, 차마 그리하지 못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뒤꼍을 벗어나오면서
나 또한 너와 함께 울었다.
그 옛날 열다섯의 내 눈에 서린 아픈 눈물을
네가 일곱 살 조막만한 손으로 닦아주던 그날,
내 언젠가 이 보답을 반드시 하겠노라고 다짐하였었다.
너에게만큼은 세상 전부를 주고 싶었었다.
그런데 오늘 웃음만이 피어오르길 바라고 바라는 너의 얼굴에서
은 체루(涕淚)가 떨어지고 있다.
다 내가 못난 탓이다.
이 모두가 내 사랑이 부족한 탓이다.
세상이 더 이상 나를 서얼(庶孼)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면
너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맛난 음식을 먹일 수 있을 줄로 알았다.
세간에서 나를 나으리라 부르게 되면
너를 인간답게 살게 해줄 힘이 나에게 생길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닌가 보다.
하마 아니었던가 보다.
내 밥상에는 언제나 고기가 올라오고 하얀 쌀밥이 수북한데,
너는 여전히 꽁보리밥과 김치쪽 두어 개로 끼니를 때운다.
나는 비단옷에 가죽신을 신고 사는데,
너만은 그대로 무명천을 몸에 두르고 다 헤어진 짚신을 신는구나.
어린시절 산사에서는 너와 나 같은 밥을 먹었고, 같은 나물을 상에 올렸다.
똑같은 무명천으로 의복을 해 입었고,
짚으로 꼬아 만든 신으로 사시사철을 한결같이 지냈다.
그런데 이 우라질 놈의 세속에서는
조선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은 유일한 정인(情人) 장채옥에게
비단옷 한 벌조차 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조선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은 하나뿐인 가인(佳人) 정채옥에게
가죽신 한 켤레조차 사줘서는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세상은 내가 널 사모하는 마음이 법도에 어긋난다고 말하더라.
세간에서는 내가 네 머리에 가채를 지워주는 것 역시 예가 아니라고 하더라.
대체 반상(班常)의 구별이라는 것이 무엇이더냐.
이 지긋지긋한 신분의 벽은 누가 만들어 놓았더란 말이냐!
정녕 조선 좌포청 종사관은 수하의 다모를 사랑해선 안 된다고
그 누가 규정을 지었다더냐.
하늘이더냐?
내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가 검으로 저 하늘을 두 동강 내버릴 테다.
아니면 백성의 신음에 귀 막고 민심의 고초에 눈 감아버린 조정(朝廷)의 간신배들이냐?
내 그럼 그 자들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릴 터이니라.
너는 내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며
네 목숨조차 내 꿈을 위해 내놓겠다고 한다.
그러나 옥아!
내가 꿈꾸는 것은 입신양명(立身揚名)도 아니요,
일신(一身)의 영달(榮達)은 더 더욱 아니니라.
오로지 옥이 너와 단둘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픈 마음 하나뿐이다.
어깨의 견장 따위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님을 옥이 너는 왜 모르느냐?
너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조차 아깝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이깟 종사관의 종 6품 벼슬쯤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음이니라.
그러니 옥아!
날 두고 떠난다는 소릴랑 부디 이제는 하지 말거라.
정녕 네가 나를 아낀다면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다오.
참으로 네가 나를 생각한다면 제발 나를 힘들게 하지 마라!
다모 드라마, 윤의 편지

 

 

 

-채옥의 답장-

어찌하오리까
아릿한 매화향을 어찌하오리까
눈물보다 더 쓰디쓰게
당신은 아프지말라 하시옵고
나는 당신보다 더 아파서
눈물처럼 웃었나이다

당신은 내 상처가 슬프다 하고
나는 당신 슬픔이 더 아파서
나는 차마 웃나이다
끝내 차마 울수는 없이
다만 가만히 웃었나이다

말은 하지 않으시고
한없이 아픈 눈동자를 들어
내게 당신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내 어찌 하오리까
내 어찌 대답 하오리까

내가 차마 사랑이라 하오리까
당신의 앞길에 목숨을 바치올말정
그 앞길에 벽이 되라 하오리까
그리하여 사랑이라 말하리까...

빛깔있는 구슬이라 하시길래
내 이름이 그런가 하였더니
알고보니 그 빛깔이 당신이더이다
사랑하여도 차마 말을 못하여
오로지 당신을 지키오리다
영혼이 사라지고 목숨이 다하기로
나는 당신 곁에 있으리이다

내게 웃지 마소서
내 상처가 아프다 마소서
나를 사랑한다도 마시고
나를 아신다고도 마소서
나는 관노 다모이옵고
나는 역모 아비가 있소이다
다만, 평생을 이리남아...
다만 당신이 살아계시기를...

내 죽어도 당신을 지킬것이니,
당신은 다만 못난 년을 잊으시고,
행복하실지언정 울지는 마소서
다시는 사랑을 말씀하지 마시고,
그저...
당신을 대신해 피흘릴 목숨에
내가 웃으며 가올까 하나이다...

나는,
조선 포도청 종사관을 사랑하는,
나는 다모라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