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삼재를 찾아서
탁삼재卓三齋
경남 밀양 산내 봉의에 소재한 탁삼재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큰 공을 세운 충효공忠孝公 김유부(金有富, 1549~1621)와 그의 아들로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출전해 전사한 기남起男, 란생蘭生 형제, 그리고 남편을 따라 순절한 최 씨와 송 씨 두 부인의 절개를 추모하기 위해 1864년(고종 1)에 지역 유림에서 창건한 사당으로, 1997년 12월 31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어초와양세삼강록漁樵窩兩世三綱錄』에는 "탁삼이라는 재의 이름은 양대에 걸쳐 한 집안에서 충효열을 모두 갖추었기에 나라에서 '탁이卓異한 삼강三綱'이란 뜻으로 내렸다"라 기록하고 있다. 탁삼재 옆은 충효각으로 나무로 만든 김유부의 비각碑閣이다.
이와 관련된 교지 등의 고문서 44점을 비롯한 편액扁額 2점, 녹권錄券(공신을 증명하는 문서)1점 등이 1993년 1월 8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탁삼재 현판은 182년(철종 13) 예조판서 김병필金柄弼이 쓴 것으로 건물의 건립 연대보다 빠르다. 또한 탁삼재에는 건립 연대를 밝히는 중요한 유물인 1864년(고종 1) 당시의 창건문과 상량문이 있다.
4세 때 부친을 여읜 김유부는 낮에는 농사일과 물고기를 잡고 산에서 나무를 하여 모친을 극진하게 봉양하며, 밤에는 서책을 읽어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효평(孝坪, 송백 들), 황산(양산), 유천, 경주, 울산 등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선무원종공신 宣武原從功臣에 녹훈 (錄勳, 공훈을 문서에 기록) 되고, 용양위장군龍陽衛將軍과 통정대부通政大夫 사복시司僕寺에 제수(除授, 왕이 직접 벼슬을 내림) 되었다.
전란이 수습되자 벼슬을 내려놓고 귀향하여 예전처럼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漁] 산에서 나무를 하여[樵] 초가(움집, 窩)에서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겠다는 뜻을 담아 호를 어초와 漁樵窩라고 하며 일생을 마쳤다. 정조 때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經筵參贊官에 증직(贈職, 죽은 뒤에 관직을 주거나 품계를 올려주던 일) 되고,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가 내렸다.
김기남, 란생 형제는 '본분을 잊지 말고 충효를 실천하라'는 선친의 유훈遺訓에 따라 병자호란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남한산성에서 전사하였다. 두 형제의 부인인 경주 최씨와 은진 송 씨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철종 때에는 두 아들에게는 진무일등공신振武一等功臣과 정려를 내렸고, 두 부인에게는 효부 열녀의 정려를 내렸다. 이들의 위패를 모신 충효사(忠孝祠)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2015년 10월에 문중(김녕 김씨)에서 재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