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8년(1575년)에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로 최황(崔滉)이 부임하여 군적(軍積)을 정리할 때 조호익에게 군적에 올랐으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를 색출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아버지의 상(喪)을 핑계로 거절하자 불량 토호로 몰아 평안도 강동현(江東縣)에 유배를 보냈습니다. 이에 조광익은 선조 11년(1578년)에 강동(江東)에 있는 아우를 만나려고 평안도부사(平安道府使)의 직책을 얻어 갔다가 이내 병을 얻어 그곳에서 42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시신을 이곳 오방리로 옮겨와 장사를 지냈습니다. 이때 강동의 많은 백성이 형제의 우의에 감복하여 흙을 짊어지고 조문하러 천릿길을 왔으나 이미 장사를 지낸 후이므로 가지고 온 흙으로 둔덕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강동구(江東邱)라 하였습니다. 선조(宣祖)는 그 우애를 가상히 여겨 정문(旌門)을 내려 표창하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싣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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